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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창고/골방의 서재

[책추천] 잔혹한 대한민국 워킹푸어의 현실 <인간의 조건>

by KESG 202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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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인간의 조건』. 20대 후반이인 저자 한승태가 2007년부터 전국 각지를 떠돌며, 워킹 푸어들이 살아가는 현실을 그대로 체험하면서 쓴 생존기를 고스란히 담아낸 책이다. 치열하지만 가난한, 가장 과소평가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꽃게잡이 배, 돼지 농장, 비닐하우스, 자동차 부품 공장 등 저자가 실제 경험한 이야기를 통해 여름엔 얼마나 덥고, 겨울엔 얼마나 추운지, 사람들은 어떤 개경
저자
한승태
출판
시대의창
출판일
2013.01.03

 

개인적으로, 정말 재밌게 읽었던 책 하나를 추천해드리고자 합니다.

책의 소개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님이 직접 꽃게잡이 배, 편의점과 주유소, 돼지 농장과 같은 단기 알바들을 하면서 겪은 갖가지 경험과 이야기들을 담은 르포르타주입니다.

*르포르타주 : 다큐멘터리 수법으로 현실의 사건과 사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기록하는 문학 형식

 

분명히, 얇은 책이 아님에도 책을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더군요.

작가님의 필력이 정말 대단해서, 단숨에 읽은 책입니다.

 

지금부터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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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말로 생생한 대화 내용

 

1. "내? 내도 을마 안 됐다. 한 6개월 됐나? 내 이전에 울산 살았는데 당진 온 지는 얼마 안 됐다. 내 공고 나왔는데 원래는 울산 현대 공장에서 17년동안 품질 검사하다가 금나두고 나와서 고깃집 하나 말아묵고, 지금은 돈이 없어가 이 일 하는기라."

2. "니 쟈들한테 쫄며 안 된다. 니가 나이 적어도 처음부터 반말해라. 만만해 보이면 이것저것 니한테 다 시키고 지들은 쉴라고만 한다."

 

실제로 대화 내용은 저것보다 두서없거나 끊기겠지만, 작가님이 기억을 토대로 재해석한 내용들은 정말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딱딱한 인터뷰가 아니라, 현장에서 생생하게 경험한 내용들이랄까요.

 

대화와 더불어, 상황 설명과 이야기의 흐름이 얼러져서 생생하게 그 인물이 다가오는 느낌마저 듭니다.

그저 작가님 본인이 일했던 상황과 심리묘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인물들의 대화를 넣은 점이 이 책을 더욱더 특별하게 만들어주지 않나 생각합니다.

 

2. 작가의 블랙 유머

 

"내가 열너살 땐가, 그때도 나무 빗자리로 머리를 겁나게 때리는데 갑자기 빗자루가 뚝 부러졌어. 머리가 단단해지면서 적응을 한거야." 그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머리가 어떻게 강철처럼 단련되었는지를 연달아 세 번 정도 들려줬다. 매번 처음하는 이야기처럼. 머리를 많이 맞았다는 것만큼은 믿어도 좋을 것 같았다.

 

작가님의 이런 유머들이, 작품 내에 녹아져 있어서 볼 때마다 예상치 못하게 빵 터지곤 합니다.

약간의 비아냥과 조소, 사회의 부조리함을 콕 집어내서 유머로 녹여내는 작가님의 필력이 참 재밌습니다.

 

 

3. 어디서도 못 들어본 생생한 현장 내용들

 

그래도 역시, 책의 가장 큰 재미는 본질적인 내용들입니다.

돼지 농장, 비닐하우스 알바, 꽃게잡이 배 등의 알바를 한 내용을 어디서 이렇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요즘에야 유튜브로도 워낙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지만, 책으로 보는 내용은 또 다른 재미와 몰입이 있습니다.

유튜브의 영상보다도, 좀 더 진위성이 있는 느낌도 들고요.

"글"이라는 매체가 주는 영향력과 효과가 있습니다.

 

영상, 이미지에서 오는 그 강렬함과 생생함은 글이 이길 수 없지만, 반대로 또 글만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와 표현이 있습니다.

작가님의 입담과 필력이 어우러져서, 그 재미는 한 층 더 깊어집니다.

 

책 속의 문장들

 

 

 
 

어떤 사람은 여전히 IMF 시절을 살고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서울 올림픽 시대의 삶을 산다.

삶의 스펙트럼 전체를 살펴본다면 얼마나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시대적인' 생활 수준을 누리는지 확인하고 놀라게 될 것이다.

 

작가님이 돼지농장에서 일하면서 느낀 내용입니다.

돼지 농장의 식당에서 고기반찬이 나왔는데, 식당의 분위기가 마치 동네잔치를 하는 것처럼 바뀌었다고 하네요.

돼지를 키우는 농장인데도, 정작 거기서 일하는 인부들은 고기를 못 먹는다는 게 참 아이러니 합니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돈" 하나로 인해 생활 수준에서 다른 시대를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 극명한 간격을 캐치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내가 보기엔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삐뚤어지게 만든다. 내가 경멸하는 사람은 황소 심줄 같은 끈기를 지닌 사람들이다. 참고 참아서 끝내는 어디선가 한자리 꿰차는 사람들. 그러니 너희들도 인생의 절반을 무의미한 일을 하며 살라고 권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비하면 중도 포기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이제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 해야겠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 그 사람의 인생 전체는 불행해집니다.

저도 경험을 해봐서, 이게 어떤 느낌인지 알겠더군요.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덜 할 테니 삐뚤어지지 않고 좀 더 올바르지 않을까요?

물론 예외는 너무나도 많고, 아무리 편하고 스트레스 없는 일을 하더라도 인성 자체가 나쁜 인간은 있습니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보편적으로 봤을 때는 돈이 많을수록 여유가 많고 마음이 너그러운 것처럼,

사람의 인성 또한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약간의 비례관계는 있지 않겠습니까?

 



 

누군가 그런 일을 그만둔다면 그건 그들이 참을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현명하고 이성적이기 때문이 아닐까?

 

작가님이 2013년에 책을 내셨는데, 그때 이런 문장이 담겨있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때만 해도, 군대에 가혹행위와 폭력이 암암리에 존재하던 때일 것이고 지금보다는 훨씬 더 "참고 살아라. 사회에 순응해라"라는 분위기가 강했을 때니까요.

 

그러니, 그 당시는 일을 그만두거나 도망친다면 오히려 참을성이 부족하다고 보던 사회였습니다.

요즘이야 SNS가 워낙 발달하고, 퇴사율도 워낙 높은 사회라서 일을 그만두는 것 자체를 지금보다는 훨씬 부드럽게 바라봐주는 분위기죠.(그렇다고 좋게 본다거나 장려한다는 내용은 절대 아닙니다.)

 

정말로 돈이 없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꾹 참고 견뎌내겠지만,

돈이 별로 급하지 않다면, 그만두는 게 사람의 본능이 아닐까요?

나의 행복을 위해서, 그리고 일에서 오는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 지금 "일"을 그만두는 것은 오히려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비밀을 엿 본 기분이 들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가 비틀거리면서도 여전히 굴러갈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

 

예전에 저도 수능 끝나고 성인이 되자마자, 자동차 부품 공장에서 짧게 2달 정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장님 다음으로 높은 분이 과장님으로 계셨었는데, 항상 새벽 5시에 먼저 와서 근무를 하셨었습니다.

5시부터 9시까지 근무를 통해서 딱히 수당을 더 주거나 그러지 않았는데도, 자발적으로 와서 일을 하셨습니다.

 

그때는 굉장히 성실하고 멋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의아합니다.

납품 수량과, 기한을 맞춘다고 그러셨겠지만 왜 굳이 돈을 받지 않고 추가적으로 근무를 하셨었을까요?

저는 가끔씩 잔업을 하면, 사장님이 꼬박꼬박 잔업수당까지 챙겨줬었는데 말입니다.

 

정상적인 사회라 함은, 당연히 내가 일한 만큼의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사회일 겁니다.

연봉, 시급을 다 떠나서 그저 받기로 한 월급이 떼이지 않고 받을 수 있는 사회.

 

책에서는 돈을 몇 달째 받지 못했는데도 계속 일을 하고 도망치지 않는 사람들의 얘기가 나옵니다.

분명히 비정상적인 상황임에도,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하니 돈을 줘야 하는 사업주는 또 돈을 계속해서 주지 않습니다.

 

이 괴상망측한 사회는 작가님이 책을 냈던 2013년이 아니라, 2024년에도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의미를 찾는 태도는 분명 숭고하고 멋집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는 정당한 보상을 받아야 합니다.

 

그 "정당함"은 사람마다 모두 기준이 다르겠지만, 적어도 돈을 떼이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합니다.

그러한 "정당함"을 위해서,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부당함" 앞에서는 싸울 수 있어야겠습니다.

 


 

이렇게 치열한 삶의 현장을 담은 책은 오랜만에 읽어봤는데, 생각보다 되게 재밌었습니다.

돼지농장에서의 그 분뇨와 꽃게잡이 배 선주의 저열함, 농장의 고독함, 공장의 그 지루함과 위험함 등등을 읽고 나니 감춰진 사회의 일면을 본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노동, 다큐멘터리, 치열한 삶의 현장과 같은 느낌의 감성을 좋아하신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드립니다.

정말 재밌고 강렬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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